하루의 나
✍️ 은곰
"이 산책이 하루의 나를 만든다.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 타인이 나, 또는 내가 만들어내는 상품을 선택해주지 않는다면 먹고살 수 없는 이 현실 속에서, 나는 내 자발적인 의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이 30분의 산책으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조금, 아주 조금 가까워진다."
000이 하루의 나를 만든다. 나에게 000은 뭘까?
갓수희 작가님처럼 이렇게 '산책‘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질문이든 한 단어로 산뜻하게 답해내는 쏘쿨한 내가 되고 싶지만, 실상은 한참을 생각해도 답을 내지 못할 때가 많다. 누군가, 예를 들면 심리상담 선생님이 물어본다고 생각해봤다. "일상 속에서: 은님이 바라는 모습에 조금 가깝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신다고. 그러면, "뭐 딱히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가 떠오르기는 해요"라고 자신 없이 이야기할 것 같다.
일기를 써요. 분명히 제가 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아요. 손이 쓰고 제가 읽어요. 나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구나 하고 알게 돼요. 신기해요. 서른여섯 살 전에는 일기는 쓸 생각도 못 했어요. 어릴 적 그림일기 써본 게 다이니까요. 그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이 많았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별수가 없어서 공책에라도 말하자 하고 시작했어요. 창구가 필요했나 봐요. 매일 쓰는 것보다는 일주일을 몰아서 쓰는 것을 좋아해요. 그럼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아주 조금은 나에게 왔던 날들을 예쁘게 볼 수 있고, 바로 보이지 않았던 내 표정 말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거든요.
수영도 해요. 선생님, 제가 제일 못하는 게 스스로 칭찬하기잖아요? 유일하게 수영장에서 나올 때는 수영장 와서 나 진짜 잘했다 너무 잘했다 호들갑을 떨며 스스로 칭찬해줘요. 수영도 일기랑 비슷한 점이 있어요. 몸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모르고 수영하기 시작해요. 그럼 아 내가 허리가 아팠구나, 체력이 떨어졌구나, 오른쪽 어깨가 아프네. 이렇게 내 몸을 모르고 있다가 비로소 알게 돼요. 분명히 내 몸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물이 제 몸을 타고 넘어가는 그 촉감이 너무 황홀해요. 여름밤에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팔을 스치는 그 감각 혹시 아세요? 그 기분을 수영하는 내내 느낄 수 있어요. 물이 저를 안아줘요.
선생님, 결국 두 가지인가 봐요. 일기와 수영이 하루의 저를 만드네요. 복잡하지 않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하는 것이 웃기다. 그래도 이참에 알게 된다. 내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을 스캔하는 것이었다.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세상을 만나기 전에, 타인의 렌즈로 나를 보기 전에 나만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