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적고 있어요. 아침 수영, 살구꽃 구경, 쫄면, 새 바지. 이런 식으로요. 세 달쯤 되니 패턴이 보여요. 저는 미식가도 아니고 배 고픈 것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먹는 사람인데,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음식 이름을 적는 거예요. 그날의 최고가 먹는 것이었다니. 맛있는 걸 먹는 것이 중요하구나, 깨닫게 되었답니다. 확장해서 보면 올봄의 하이라이트, 올해의 하이라이트에도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이 꼭 포함될 것 같아요. 오늘 레터는 맛있는 걸 먹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문장을 모았어요. 여름 준비로 식단 조절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또 다이어트할 때 먹는 한 입이 제일 맛있잖아요? 오곰님들이 맛있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날들을 보내시길 바라며 레터를 보냅니다. _쩝쩝박사😋를 꿈꾸는 은곰 드림 🐻

열렬히 당당하게 무지의 고백 중

치열하게 살았던 만큼

Drawing a perfect, U n I

우리 색채는 뚜렷하니깐"

누구나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맛있는데 슬픈 음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내겐 ‘진미채 볶음’이 그런 음식이다. 맛있지만, 조금 슬픈 음식.

“너는 왜 맨날 빨간 반찬만 싸 와?”
고등학교 때 같이 도시락을 먹던 무리의 친구 하나가 말했다. 그때 내 얼굴은 진미채 볶음보다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날의 기억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악의 없이 던진 반 친구의 말은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닿아 두고두고 나를 슬프게 했다.

그 시절 엄마는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했다. 일하다 다친 허리가 도통 낫질 않아 몇 번의 수술과 입원이 반복되었고 그런 상황에도 외출을 신청하고 나와 가족이 오래오래 먹을 수 있는 마른반찬을 잔뜩 만들어두고 돌아갔다. 멸치볶음이나 진미채 볶음 같은 것.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늘 김치와 마른반찬을 쌀 수밖에 없었던 나의 도시락은 소시지와 햄, 계란말이를 곱게 싸 오는 친구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김치와 마른반찬에 물린 내가 그녀의 반찬을 너무 많이 먹는 게 얄미웠을 수도 있다. 친구의 말에 혼자 울음을 삼켰던 그날 이후로 나는 진미채 볶음을 미워했다.

거들떠보지 않던 진미채 볶음은 이제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을 정도로 좋아한다. 크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몰라도 다른 집 반찬과 비교해도 엄마의 진미채 볶음은 확실히 맛있었다. 맛있다는 말에 자신의 레시피를 한껏 자랑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운 것 또한 좋아하게 된 이유일지도.

작년 엄마 생일날 진미채 볶음에 얽힌 슬픈 비밀이 언니를 통해 엄마에게 공개되었다. 술기운이 오른 엄마는 눈물이 고인 채 나를 보며 미안해했지만, 더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엄마표 진미채 볶음이니까.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_김창환 <어머니와 고등어> 중

집에 다녀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주는 반찬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안다. 여전히 그 반찬들을 보며 눈물이 나는 건 가난함을 숨기고 싶어 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아니라, 본인이 힘들어도 잘 챙겨 먹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진미채 볶음을 영원토록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