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단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모를 뿐이야' 하고 아버지가 말하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몰라. 우리가 그것의 작동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 모를 뿐이야' 하고 어머니가 맞받았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르네는 자동차 보닛을 들어 올려 엔진을 관찰하고 냉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 냉장고 뒤쪽을 살피는 아이로 자랐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꿀벌의 예언>

두부와의 여행

by 막쓰다미리

나의 가족들과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파워 P인 나와 파워 J인 남편, 큰 딸이 함께 하는 여행은 다툼의 연속이다. 준비하면서 싸우고, 가면서 싸우고, 가서 싸우고, 오면서 싸우고, 도착해서 싸운다. 여행은 준비하는 동안, 여행하는 동안 모든 순간이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르는 우연을 즐기는 P와 그 선택에 따르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즐기지 못하는 J들의 여행은 늘 옳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1박 2일 여행은 달랐다. 준비하는 내내 기대에 가득 찼고, 막히는 도로 안에서도 즐거웠고, 도착한 미술관이 굳게 닫혀 있어도 행복했고, 여행 내내 가고 싶은 곳은 단 한 군데도 가지 못 했어도 우리 가족 중 짜증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한 사람은, 아니 생명체는..................... 강아지다. 아니,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25kg에 육박하니 개가 맞지만 이제 생후 9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강아지가 맞...나? 암튼, 작년 7월 우리 집에 운명처럼 나타난 진돗개 ‘두부’로 인해 우리 가족은 아주 특별한 여행을 경험했다.

세아의 소원 목록 1위는 항상 강아지였다. 아빠와 수학 시험 내기를 할 때도 소원은 강아지, 손톱 물어뜯지 않기 내기에서도 강아지, 산타할아버지에게 비는 소원도 항상 강아지였다. 하지만 냉정한 남편과 큰 딸은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101가지 이유를 들며 세아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세아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세아야, 아빠랑 언니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운명적인 아이가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자”

그리고 세아 12세에 드디어 운명 같은 아이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세아의 소원을 알고 있던 외할머니가 지인의 진돗개가 새끼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3만 원에 찜해두고, 세아와 지예가 외갓집에 방문하는 날 “짜잔~~”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셨다.

3개월짜리 진돗개는 정말 말도 못 하게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남편에게 강아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고 집으로 데려간다고 말한 후, 남편의 카톡은 읽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박스 안에 담긴 강아지를 본 남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남편의 어색한 긍정임을 알기에 나도 모르는 척했다. 

강아지의 첫 이름은 “여름”이었다. 엄마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가을”이었고, 이 강아지는 여름에 만났으니 엄마는 “여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가 원하는 이름이 달랐다. 세아는 “하루”가 좋다고 했고, 지예는 “감자”가 좋다고 했다. 이름에 대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저녁을 준비하면서 “얘들아, 오늘 저녁은 두부야”라고 말하자, 거실에 있던 3명이 동시에 “두부??”하며 서로의 얼굴을 봤고, ”두부 좋다!! 강아지 이름 두부 하자!!!” 해서 만장일치로 우리 집 진돗개는 “두부”가 되었다.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온 첫날 집 근처 반려동물용품숍에서 사료며, 배변 패드 등등 이것저것들을 사 오고 유튜브에서 새끼 강아지 키우는 법을 검색해보고, 유튜브에서 하라는 대로 강아지를 울타리 안에 넣고 배변패드에 대소변을 가리는 법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날 밤 거실 강아지 울타리 밖에 이불을 펴고 잠자겠다고 신났다가 밤새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 위해 낑낑대는 강아지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하자 금세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잠자리에 예민한 남편이 혹시나 강아지 때문에 잠 못 잔다고 화를 낼까 봐 나만 혼자 강아지 옆에서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밤을 꼬박 새우다 지친 나는 니 맘대로 해버려라 하는 마음으로 거실 바닥 전체에 배변패드를 깔아놓고 울타리를 열어주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울타리 밖 배변패드에 소변을 보았고, 볼일을 다 본 후 언제 밤새 낑낑거렸냐는 듯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밤을 새워서 지친 몰골로 그 모습을 본 나는 충격에 빠졌다. 강아지는 울타리 밖에서 소변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유튜브에서 시키는 대로 절대로 울타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밤새 씨름을 했으니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문득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이 생각났다. 유튜브도 없던 그때 육아 대백과사전을 읽어가며 책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던 아이를 안고 내가 더 크게 울었던 그 날이. 나는 결혼, 엄마의 삶과 마찬가지로 강아지를 키우는 일 또한 고민과 성찰 없이 꿈과 로망만 품은 채로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돗개가 어떤 특성을 가진 견종인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하얗고 예쁜 생후 3개월의 모습만 보고 덜컥 이 개를 키우기로 결심했으니 9개월 만에 25kg이 넘어 두 발로 서면 13살 딸보다 더 큰 강아지가 된다는 것도 모르고, 실외배변만 해서 하루에 3번 꼭 산책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새끼 때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공격성이 매우 높은 아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반려인이 되고 만 것이다.

SNS에 보이는 남의 집 애들은 예쁘기만 한데 우리 집 애는 진상진상 상진상인 것처럼, 남의 집 개들은 산책도 잘하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우리 집 강아지만 이렇게 교육이 안되는건지 두부를 키우면서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고, 예뻐하기만 하고 뒷감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과 큰 아이는 그러니까 키우지 말자고 했지라고 원망했고, 세아는 두부가 강아지의 로망을 모두 파괴시켰다며 원망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 그때부터 하루 종일 온갖 강아지 유튜브를 찾아보고, 진돗개의 특성을 찾아보고, 이 방법 저 방법으로 교육을 시켜봤다. 내가 알아온 교육 방법으로 아이들과 하나씩 해보고, 교육을 하면서 점점 좋아지는 두부와 함께 하는 시간이 편안해지면서 우리 집에도 드디어 안정이 찾아왔다. 그래서 처음 두부와 함께 떠나게 된 여행.

원래 사춘기 아이들과 여행 한 번 가려면 여행을 왜 가냐, 그냥 집에 있고 싶다로 시작해서 출발한 지 30분 만에 언제 도착하냐, 차 안에서 자기 불편하다, 이거 볼려고 여기까지 왔냐 등등의 불평불만이 계속 쏟아지는데 이번 여행은 반려견 펜션 방문이 주목적이었기에 아이들은 출발 전날부터 기대에 가득 찼다. 여행날 아침 알아서 일어나 여행 준비를 모두 마쳤고, 2시간이 넘는 차 안에서도 두부와 노느라 지루한지 모르고 달렸다. 첫 번째 일정이었던 미술관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음에도 “괜찮아, 여기 잔디에서 두부랑 놀면 되지”라고 말한 건 파워 J인 큰 딸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오픈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온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가 한가득이었을 텐데 이번엔 아니다. 다행히 미술관 옆으로 예쁜 강이 흐르고 있었고, 커피와 빵을 사서 두부와 산책하며 “예쁘다, 좋다”를 연발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한 기분이었다. 두부와 처음 가본 반려견 펜션에서는 목줄을 풀고 잔디밭에서 원 없이 뛰어놀고, 두부랑 같이 영화 보고, 같이 잠을 자면서 아이들은 행복하고 좋다는 감탄을 계속 내뱉었다. 두부가 예쁘면서도 예뻐하는 척을 하지 않던 남편도 아이들이 두부 덕분에 행복해하고 여행이 즐거우니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우리는 진짜 드디어 가족이 된 것 같았다.

사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가고 싶은 장소는 대부분 강아지와 들어갈 수 없었고, 어디를 가도 혹시나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목줄을 바짝 잡고 긴장해야 했다. 여행 내내 식사는 포장해서 공원에서 먹거나, 바닷가에서 먹거나, 차 안에서 먹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불만이 없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강아지와 함께 있으니 지나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들도, 연인들도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고, 아이들은 우리 강아지를 사람들이 예뻐하니 자랑스러워했고, 좋아했다.

두부와 여행을 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아는 갑자기 “앞으로 두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두부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우리랑 살았으면 좋겠어. 내 소원은 그것뿐이야”하며 울었고, 우는 세아를 보며 오늘의 문장이 생각났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지향적이다."

_장일호, <슬픔의 방문>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