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여러 갈래로 찾아온다. 사전에서 ‘불안’을 찾아보니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 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사고를 치고 언제 혼나려나 숨어 있을 때 심장이 쿵쾅거리던 순간, 남들은 뛰어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 퇴사를 앞두고 명확한 계획이 없어 앞날이 깜깜한 모습, 해보지 않았던 것을 도전할 때 실패할까 걱정하는 마음,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까 봐 단점과 부족함을 애써 감추고 전전긍긍하는 마음처럼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이 불안과 맞닿아 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려보면 사람들은 강요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타인과 같아지려 하고 타인과 구분되지 않을 때 자신이 일치됨을 느낀다고 한다.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남들과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하며 뚜렷함보다는 적당하게 흐릿한 모습으로 다수에 속해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 하지만 ‘나만의 것’을 주장하는 데는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You don’t have to be the something you see

네가 본 것처럼 꼭 될 필요는 없어

Tryin’ bot be that something in the sea

이 바다에서 무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해

spring always been here

봄은 언제나 여기에 있었어

_RM, <Come back to me>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봤던 세상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가사가 지금의 나의 불안을 가라앉혀준다. 퇴사를 하고 1년 반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명확한 직업이 없다. 일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직책을 받아 명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NGO의 아동 편지 번역 일을 하고, 자기성찰 플랫폼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시 프로젝트의 일부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브랜드 경험 관련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고, 서점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무언가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수입은 생활을 간신히 이어갈 정도에 그친다. 그냥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다. 이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안은 가끔 만나는 친구처럼 곁에 붙어 있다가도 저 멀리 거리두기를 하기도 하며 이를 반복하는 중이다. 10년 넘게 일했던 분야를 접어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이런저런 일을 시도하고 있기에 안정적인 소득과 명함 한 장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그때가 아주 가끔 그립기도 하다.

나는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오래 걸렸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결정은 약 1년 반이 걸렸고, 첫 번째 이직 결정은 3-4년을 고민했다. 이런 내가 지금의 명확하지 않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시선을 멀리 두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오늘의 할 일을 하고, 오늘의 할 수 있는 것을 쌓다보면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해도 어떤 날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이 가득 차오르지만 어떤 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SNS에서 갓생을 살거나 누가 봐도 멋있다고 말하는 삶은 내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 자신도 없었다. 내가 아는 나는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하늘이 맑은 날 산책을 하고, 날씨가 좋은 날 저녁에 손톱달 사진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가까운 지인들과 소소히 차 한잔, 밥 한끼 맛있게 함께하면 그것만으로도 오늘 행복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손에 잡히지 않을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가 욕심나지 않는다. 물론 욕심을 내어본들 쉬이 가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해내야만 하는 애쓰는 삶을 오래 살다가 퇴사를 해서 그런가, 해낼 수 있는 만큼 해내고 싶다. 남들이 인정해주면 좋지만,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답게, 나스럽게 소소한 행복으로 하루를 채워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살고자 하는 나를 응원하며, 무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름 모를 친구들에게 무언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고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다. 노래의 가사처럼 봄은 이미 여기에 와있으니까.